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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게츠 이야기]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연출 이해하기

개발자 치즈 2024. 11. 2. 18:34

https://www.youtube.com/watch?v=_F-vq_X8qiI

 

<우게츠 이야기>는 유튜브의 무비콘 영화 계정에서 감상할 수 있다. 

 

미조구치 겐지 감독은 한 공간 안에서 인물의 동선 변화를 주어 씬의 분위기를 자유롭게 변주해낸다. 

 

처음에는 남편 겐주로가 왼쪽, 아내 미야기가 오른쪽에 있는 구도로 대화가 시작된다. 미야기는 겐주로가 번 돈으로 사온 옷을 입어보고는 좋아한다. 이때 대화를 주도하는 쪽은 겐주로이다. 한편, 겐주로가 자신의 아들을 안고 자연스럽게 방 뒷쪽으로 이동하면서 대화의 중심이 아내에게로 넘어간다.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겐주로의 주장에 대해 아내는 전란 때문에 걱정스럽게 여기는 것을 대조시킨다. 

이렇게 단순히 겐주로가 몇 걸음 이동하는 것만으로 인물 주변의 배경이 바뀌어 마치 다른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낸다. 

 

와카시 유령의 등장 씬에서는 먼저 복잡한 시장의 전경을 보여주고, 그 사이로 와카시 유령이 사뿐히 걸어 내려오는 것을 카메라가 함께 따라가다가, 와카시가 멈추는 순간 카메라 또한 함께 멈춘다. 그 다음 와카시의 뒷모습과 겐주로의 깜짝 놀라는 반응을 먼저 보여주어 모습을 알 수 없는 그녀의 신비로움을 부추긴다. 리버스 샷은 직전 샷의 와카시-겐주로 사이의 상하관계가 그대로 유지된다. 여전히 와카시는 왼쪽 상위에 배치되어 있고, 겐주로는 오른쪽 하위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겐주로가 옷가게에서 아름다운 옷감을 바라 볼 때 돌연 환상적인 하프의 소리가 들리며 공상에 빠지는 것을 암시한다. 고향에서 일하는 아내의 시공간과 옷가게에 있는 겐주로의 시공간이 부딪혀 연결되는 지점에서 다시 한 번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놀라운 장면이다. 이 상상이 끝나자마자 바로 아카시와 그녀의 유모를 만나 쿠츠키 저택으로 가는 이야기의 흐름도 짜임새 있다고 느껴진다. 

겐주로가 유령에게 홀려 쿠츠키 저택으로 가는 길은 가로 선을 잇는 호수와 먹먹한 안개를 끊어내는 길쭉한 갈대들로 을씨년스럽다. 중간에 버려진 집의 내부를 인서트로 보여줌으로써 겐주로의 불안한 미래를 넌지시 알린다. 

아카시의 유모가 어떻게 등장하는 지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 또한 재미가 있다. 그녀 또한 유령으로서 화면에서 존재감을 감추다가 불쑥 나타나는 편인데, 위 씬에서 처음에는 찻잔을 올리는 손으로 아주 작게 등장하고, 그 다음에는 아카시와 겐주로의 대화 장면에서 마스킹 샷을 위해 병풍처럼 놓인 피사체를 담당한다(왼쪽 위 사진). 그 다음에는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고 중대한 대사를 읊으며 존재감을 드러냄으로써 관객과 겐주로를 깜짝 놀라게 한다 (오른쪽 위 사진). 

이 컷이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것 또한 주의깊게 봐야할 부분이다. 하녀는 대사를 친 후 오른쪽 외화면으로 빠지고, 오버 더 숄더 샷의 숄더 역할을 하고 있던 아카시는 점점 겐주로에게 다가가다가 왼쪽 외화면으로 빠진다. 그 다음 정신을 못차리는 겐주로가 하인들의 손에 이끌려 오른쪽 외화면으로 나가면서 비로소 빈 무대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사무라이로서 출세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토베이는 잠시 유곽에 들렀다가 그의 아내 오하마를 우연히 만난다. 그들의 참담한 조우는 유곽의 어느 방 안(왼쪽 사진)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느새 바깥(오른쪽 사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처럼 미조구치의 '두루마리 숏'은 그 사이 마스터 샷이나 투샷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우아하게 이야기를 서술하면서도, 대화가 단조롭지 않게 느껴지도록 한다. 그의 롱테이크는 이 장면 말고도 다양한 씬에서 쓰이며 비슷한 효과를 만든다. 

당대의 정서를 고려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몇몇 에로틱한 장면들을 노출이나 자극적인 요소 없이 담담하게 연출한 점 또한 눈여겨 보았다. 토베이의 아내 오하마가 떠돌이 군인들에게 겁탈 당할 때는 오하마의 비명 대신 사찰의 염불을 덧씌워 더 비극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겐주로가 아카사와 함께 목욕을 하는 씬에서는 아마도 벗은 몸을 황홀하게 바라보는 겐주로의 표정과 아카사의 부끄러운 웃음, 찰박거리는 물소리로 충분히 야릇한 공기를 만들었다. 

 

이 영화의 베스트 씬은 단연 마지막 '미야기의 등장'이 아닐까. 겐주로는 유령의 꼬임에서 벗어나 다시 고향집을 찾아간다. 처음 그가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아무도 없는 공간을 비추다가, 그가 집을 한 바퀴 크게 돌고 다시 들어왔을 때, 마치 마법처럼 불을 때는 그의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찰랑이는 불꽃은 마치 죽은 미야기의 영혼에 잠시 숨을 불어 넣는 것 같다. 

미야기는 겐주로와 아이가 잠든 이 순간이 영원하도록 부지런히 시간을 바느질한다. 그러나 어두운 방 안은 이내 벽 틈으로 새어나오는 강한 빛을 통해 다음 해가 뜨는 것을 알린다. 부자가 되겠다고 떠난 겐주로의 포부는 군데군데 빛이 새어드는 그의 허름한 나무 집만큼이나 어설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