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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차] - "문명으로부터 해방되겠군"

개발자 치즈 2024. 3. 10. 19:38

1939년 서부극 영화

 

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닥터 분의 마지막 대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려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보안관과 주정뱅이 의사가 사랑에 빠진 두 남녀(댈러스와 키드)를 위해 마차를 준비해서 태운 후, 그 등 뒤에서 돌맹이를 주워 던져 마차를 출발시킵니다. 출발한 마차는 드넓은 모뉴먼트 벨리를 향해 달리면서 끝이 납니다. 떠나가는 마차를 바라보며 의사는 보안관에게 이 영화의 전반을 관통하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하나 내뱉습니다. 번역본에서는 이 대사를 “저들은 문명으로부터 해방되겠군.“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우선, 번역가가 누구였든 상관없이, 저는 댈러스와 키드가 로즈버그에서 모뉴먼트 벨리로 ‘되돌아가는’ 장면을 해석하기에 참 아쉬운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본의 표현을 가져왔습니다. 닥터 분은 댈러스와 키드를 떠나보내며 정확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Well, they’re save from the blessings of civilization.” 이 대사를 통해 커플을 태운 역마차의 정착지가 적어도 ‘또 다른 울타리 안’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문명의 경계였던 울타리를 벗어나, 그리고 탈옥수, 매춘부에 대한 편견이 섞인 관객의 눈으로부터 벗어나 그들만의 온전한 삶을 찾으러 화면 밖으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닥터 분의 대사 장면

 

존 포드가 이끄는 역마차는 반복적으로 마을의 울타리를 벗어나 광야로 향했고, 따라서 이 영화에서의 마지막 마차 또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여기서 마을의 울타리는 문명을, 울타리 밖의 넓은 평원은 통상 야만이라고 해석합니다. 정말 문명의 반대말은 야만일까요? 존 포드의 <역마차>가 기존의 고전적 서부극과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데에는 그가 해석하는 문명의 반대말이 ‘야만’ 또는 인간의 이기를 압도하는 ‘자연'을 넘어선 철학적인 관념이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를 설명하는 일례로, 그는 일부 마을 구성원이 인디언과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통해 오히려 문명과 통상적 야만의 융합된 양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역마차 안이라는, 편견으로 가득했던 또 하나의 작은 문명을 굳이 넓은 평원과 자주 대조하여 화면에 보여줌으로써 그저 문명의 대척점이 단순한 ‘자연 환경’의 의미로 해석하기 어렵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댈러스와 키드를 태운 마지막 마차는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요? 더군다나 둘이서 탄 마차는 이전까지 탔던 비좁고 천장이 막힌 답답한 모양의 것이 아닌, 가볍고 사방이 탁 트인 마차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더이상 그들은 생계를 위한 직업, 가족을 위한 복수라는 복잡한 인연의 굴레에서 벗어났으며, 사회적 신분과 시선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존 포드가 향하려는 역마차의 정착지이며, 어쩌면 둘을 축복하며 떠나 보내는 보안관과 의사 뿐만 아니라 관객 또한 같은 마음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