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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키루]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연출 이해하기

개발자 치즈 2024. 11. 27. 01:37

이 영화의 줄거리는 크게 세 분절로 나뉘는 것 같다.

주인공 와타나베가 자신이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절망하는 시퀀스, 

술집에서 한 작가를 만나 유흥을 즐기고, 시민과에서 같이 일했던 오다기리 도요를 만나 각성하는 시퀀스,

와타나베가 죽고난 후 그의 장례식에서 직장 동료들이 주인공의 행적을 회상하는 시퀀스.

사람의 크기 변화로 화면에 공간감을 주는 구도가 인상적이다. 각자의 머리가 향하는 방향을 따라 한 선을 그으면 주제부인 주인공에서 끝이 난다.

그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과정은 꽤 우스꽝스럽다. 자신의 위암 선고를 의사로부터가 아닌, 대기실의 노인에게서 듣게 만든 것은 구로사와 감독의 어떤 숨은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 와타나베는 병원 대기실에서 곁에 앉은 다른 노인으로부터 위암 판정을 받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마치 병원에서 어른이 아이를 겁주려는 것처럼, 노인은 와타나베에게 섬뜩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래서인지 와타나베는 노인에게서 이미 위암 판정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그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와타나베가 관객에게 주는 긴장감은 정작 의사를 만났을 때 느슨해져 버린다. 노인의 말대로 상황이 진행되자 관객은 마치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미리 노인에게서 들어버린 것 같은 배신감이 든다. 이 절망적인 기분은 아마 위암을 확신하는 와타나베의 심경과 비슷할 것이다.  

나는 구로사와 감독이 이 영화 전반의 분위기와 어울릴 지 모를 기이한 장면들을 끼워 넣는 취향에 대해 매우 동의하고 싶다. 

아들 부부의 대화 도중에 갑자기 어두운 방 구석에서 귀신처럼 나타나는 와타나베의 모습,

소중한 아들이 와타나베를 시덥지 않은 이유로 불렀을 때 계단에 엎드려버린 와타나베의 모습,

카페에서 도요에게 다가가며 '너처럼 되고 싶은데 어쩔 줄 모르겠다'라며 눈을 번뜩거리며 간청하는 와타나베의 모습. 

어찌보면 조금 과장되어 있거나 무섭다고 느껴지는 장면들을 통해 신파에 가까운 극적 요소들을 감각적으로 이미지화한다. 

술집에서 보여지는 거울 씬은 배경 음악만큼이나 생동적이다. 먼저 카메라는 분주하게 연주되는 피아노를 보여주고, 그것을 연주하는 연주자와 술을 건네는 여자를 대각선 아래 방향으로 이동하며 찍은 다음, 바로 다시 대각선 위로 움직여 거울에 비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곧바로 댄서가 무대 중앙을 지그재그로 가로지름에 따라 카메라도 그 동선을 따라 함께 움직인다. 이때 잠깐의 인서트로 피아노 연주자의 모습을 구슬주렴 사이로 얼핏 보이도록 연출한 점이 인상적이다.

마침내 댄서와 피아노 연주자는 대형 거울 앞에서 만난다. 관객은 화면의 거울 속에서 피아노 연주자의 표정을 보고, 거울 밖에서 댄서의 표정을 본다. 다시 카메라는 달리 아웃 하면서 이동하는 댄서를 따라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와타나베의 신청곡으로 분위기가 전환되면서 춤을 추려는 남녀가 화면 안으로 하나 둘씩 들어온다. 그중 몇몇은 화면에 가득 드리워 진 구슬 주렴을 걷으며 무대로 넘어가는데, 이를 통해 화면에 입체감을 더하면서도 그들의 손길에 살랑대는 주렴들이 리듬감을 주기도 한다. 

산송장같았던 와타나베가 돌연 생기가 도는 얼굴로 계단을 내려가고, 동시에 생일파티의 주인공이 계단을 통해 올라간다. 생일 축하 노래가 와타나베를 배웅한다. 마치 다시 환생한 것처럼 그는 죽음에 가까워 졌을 때 비로소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